나의 이야기

<반추(反芻)하다 – 길 위에서 길을 묻다 1>

monologue1 2018. 4. 17. 11:03

 

 


원래 반추(反芻)”란 말은 소나 양처럼 반추위(反芻胃)를 가진 동물들이 한번 섭취한 음식을 게워 내어, 다시 씹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이 인간 현상에 적용되면 지나간 일을 되풀이하여 기억하고 음미한다.”는 뜻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스치듯 지났던 일들을 다시 떠올려 그때의 삶을 반성하거나 아니면 앞으로의 삶에 중요한 지표로 삼을 때 우리는 반추한다고 말한다.

 

오늘 반추(反芻) 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긴 글을 시작함에 있어 내 굳이 반추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오래된 취미, 그러니까 스치듯 지나왔던 그 여행의 기억들을 떠올려 여행지에서 경험했던 다양했던 심상(心象)과 그리고 그 의미를 기록하고 그리하여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나아가 그런 내 수고가 이 글을 읽게 되는 누구에게라도 작은 도움 하나 될 수 있다면 그로써도 좋겠다는 생각에서이다. 함께 반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살아가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리가 길을 걷는 것과 같아서 늘 고단하지만 굳이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위해서라도 걸어야 하는 것이고 아니면 그저 하릴없이 라도 걸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린 늘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 길을 걷고 있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 것. 그건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 지표와 지향을 생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그 일들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난 늘 길 위에서 길을 묻게 된다.

 

반추(反芻) - 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글을 쓰기 위해 난 또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할지, 그리고 난 또 얼마나 더 많은 글과 책, 그리고 논문들을 읽어야 할지, 또한 얼마나 더 많은 옥편과 백과사전을 뒤져야 할지 처음부터 아득해지지만, 그래도 내 삶을 기록하고 그리고 내 삶의 지향을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주저 없이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역사에 대해 문외한인 어느 한 인간의 인문학적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래전, 내가 그 길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리고 내가 가고 있던 그 길이 정녕 내가 가고자하는 길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을, 내게 그 길을 지향을 말해주었고 그리고 그 길에 늘 격려와 위로가 되었던 반추(反芻)의 계기가 있었다.

 

도산서원. 이황 선생이 말년을 보냈던 거기서 난 내 길을 보았고,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큰 위로와 격려를 주었었다. 노학자의 삶, 노학자의 공부, 그리고 노학자의 살아온 여정이 결국 그분과 우리가 걸었던 예던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더 길고 더 많은 길을 말하고 싶지만, 오늘은 그저 조선의 개국으로부터 그 길의 첫발을 디디고자 한다. 함께 걸어주고 함께 느껴주기를.

 

 

Hanna Chang - The Swan